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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전 그날, 천안함 사건

2010년 3월 26일 천안함 피격사건

천안함 사건 발생지역

2010년 3월 26일 – 오후 9시 22분

대한민국 해군 제2함대 사령부 소속 천안함이 서해 백령도 부근에서 침몰 한다.

해군 제 2함대 사령부는 사건발생 6분이 지난 21시 28분에 천안함의 침몰 상황을 접수하였고 21시30분에 대청도에 있는 고속정편대를 천안함이 침몰한 지역으로 보내 수색을 지시한다.

천안함 구조작전

2010년 3월 26일 – 오후 10시 10분

생존자 수색에 나선 구조대는 현장에 도착하여 생존자를 구조하기 위한 활동을 개시.

구조활동 개시 18분이 지난 22시 28분에 첫 생존자를 구조하는 것을 시작으로 하여

23시 13분까지 총58명의 생존자를 구조한다.

해양경찰청

2010년 3월 26일 – 오후10시30분

해양경찰청에는 갑호비상령이 내려졌고

동해지방 해양경찰청에는 을호비상령을 내리게 된다.

  • 갑호비상령: 계엄령이 선포되기 전의 상태에서 발령 -> 경찰 전원 비상근무
  • 을호비상령: 집단사태로 인한 치안이 악화되었을 때 발령 -> 경찰 50%가 주야간 비상근무

해양경찰청에서 비상령을 발령한지 20분이 지난 22시50분 대한민국 경찰청에서 수도 서울과 북한과 대치하고있는 인천 경기 강원지방경찰청에 을호비상령을 발령

정운찬 당시 총리

2010년 3월 27일

정운찬 국무총리는 “초계함 침몰 사고는 국가 중대사태이다.” 라고 말하였고

행정안전부를 통해 전국의 공무원들에게 총대기령을 내리고 혹시 모를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게 하였다.

공무원 총대기령은 2004년, 노무현 전대통령이 탄핵당했을 당시에 발령된 이후 6년만에 다시 발령되었다.

  • 이때 국군은 천안함 사건이 북한의 소행임에 대해 확신을 갖고있지 않았다.
천안함 수색

2010년 3월 27일

정운찬 국무총리에 의해 한국 공무원들에게 총대기령이 발령되었을 때

미국은 구축함 2대를 서해에 파견하여 북한의 도발을 대비하여 만반의 태세를 갖추었으며, 대한민국은 잠수요원 18명을 보내 탐색구조작전을 실시한다.

옹진함

2010년 3월 28일

대한민국 해군 소속 기뢰탐색함 옹진함이 음파탐지기로 천안함의 함미를 찾아냈고

하루가 지난 2010년 3월 29일에는 기뢰탐색함 양양함이 음파탐지기로 천안함의 함수를 찾아냈다.

대한민국 해군은 생존자들이 아직 남아있을거란 실낱같은 희망에 천안함 함미에 공기를 주입하기 시작한다.

고 한주호 준위

2010년 3월 30일

국군은 옹진함과 양양함의 공으로 천안함이 침몰한 지역을 정확히 알아냈고

그 지역을 중심으로 하여 수색작업을 벌이게 되는데 그만 불의의 사고가 발생하고 만다.

사진에 보이는 해군 특수전여단 수중폭파대(UDT)소속 한주호 준위가 수색작업 중 그만 실신한 것이었다.

급히 미국 해군 구조함 살바로 이송되어 응급조치를 받았으나 끝내 전사하고 만다.

2010년 4월 1일

한국지질자원연구원에서 사건당일 (2010년 3월 26일) 21시 21분 58초에 1.4~1.5도 규모의 진도를 감지한 사실이 밝혀졌다.

이는 다이나마이트 170kg이 폭발한 것과 같은 수치였으며

이 발표로 대한민국은 북한의 소행이라는것에 더 확신을 갖게 된다

신선준 중사

2010년 4월 2일

실종된 신선준 중사의 아버지 신국현씨는 2010년 4월 2일 아침에

평택시 해군 제2함대 동원예비교육대 식당에서 2인분의 식사를 주문하고서는 자신의 앞에 식판과 수저를 배치했다.

그러나 신국현씨의 앞에 앉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신국현씨는 눈물을 흘리며 이렇게 말했다.

“아들아 생일 축하한데이. 밥 많이 무그라”

이 날은(2010년 4월2일) 신선준 중사의 생일이었다.

캄보디아 화물선

2010년 4월2일

천안함 사건 수색에 나섰던 민간인 어선 98금양호가 실종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는 캄보디아 화물선인 타이요호에 의한 충돌로 발생한 사건인데 타이요호는 사건 발생 직후 도주.

사건발생 하루가 지난 4월3일 대한민국 해양경찰에 의해 검거되었다.

고 남기훈 상사

2010년 4월3일 – 오후6시 10분

수색작업에 나선 해난구조대 소속 석규주 중사화 송하봉 중사는

천안함 함미 부분 식당안에서 남기훈 상사의 시신을 발견했다.

남기훈 상사는 자상한 남편이었으며, 세아들에게 다정하고 존경스러운 아버지였다고 전해진다.

그에게는 아들 남재민 군, 남재현 군, 남재준군이 있는데 남재준 군은 사건당시 3세의 어린아이였다.

남재준군은 아버지가 실종자 명단을 보도하는 TV에 아버지의 사진이 나오면

아무것도 모른채로 “텔레비전에 아빠가 나왔다.” 면서 좋아했다고 한다.

남기훈 상사의 부인이자 세 아들의 어머니였던 지영신씨는 그 모습을 보고 오열한다.

천안함 사건 실종자 가족협의회는 정말 어려운 결단을 내려 기자회견을 열게 된다.

“더 이상의 인명 구조와 수색작업에 대한 중단을 군에 요청했습니다.”

이는 한주호준위의 전사와 98금양호의 실종사실, 남기훈 상사의 시신 발견소식을 접하고서 추가적인 피해를 원치 않으며 실종자들이 살아있으리라는 생각을 포기하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이에 해군은 실종자 가족협의회의 결단을 받아들이고 2010년 4월 4일부터 천안함 인양작업을 시작하게 된다.

김태석 상사

2010년 4월 7일 오후4시경

해난 구조대 대원들은 천안함 함미 기관조종실 부근에서 김태석 상사의 시신을 발견하였다.

김태석 상사는 중사로 천안함에서 복무 중이었다.

2010년 4월1일, 김태석 중사는 해군상사로 진급하게 되었는데

이에 김태석 상사의 부인인 이수정씨는 말했다.

“사고만 없었으면 어제 살아서 상사 계급장을 달고 정말 좋아했을 텐데…..”

천안함 생존자 실종자 가족

2010년 4월 8일

천안함 사건 생존자들과 실종자들의 가족들 간의 만남이 이루어졌다.

실종자들의 가족들은 생존자들에게 실종된 가족의 마지막 모습을 묻기도 하였고

동료를 구하지 못한 채 혼자서만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에 빠져있는 그들을 위로하기도 하였다.

만남의 장은 눈물바다, 그 자체였다.

천안함 민국합동조사단

2010년 4월 11일

천안함 사건에 대한 진상조사를 규명하기 위한 민군 합동조사단이 발족했다.

천안함 인양

2010년 4월 15일

국군은 침몰한 천안함을 인양하는데 성공했다.

천안함은 곧바로 해군 제2함대 사령부로 이송되었고

곧 실종되었던 장병들 중 36명의 시신을 찾을 수 있었으나

8명의 장병들은 아직 생사를 확인 할 수 없는 실종상태였다.

2010년 4월 15일 실종자 상황

시신발견 – 38명

시신 미발견 – 8명

총 46명

천안함 북한 반응

2010년 4월 17일

북한은 이날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대한민국 정부와 군을 비난했다.

“남조선 괴뢰군부 호전광들과 우익 보수정객들은 침몰 원인을 규명할 수 없게되자

불상사를 우리와 연계시켜 보려고 어리석게 획책하고 있다.

역적 패당은 최근 외부 폭발이 어뢰에 의해 일어났고”

“어뢰는 우리 잠수정이나 반잠수정에 의해 발사됐을 가능성이 크다는 ‘북 관련설’을 날조하여 유포시키고 있다”

2010년 4월 19일

이명박 대통령은 “천안함 장병들을 가슴에 새기며“라는 주제로

전사한 장병들의 이름을 모두 호명하며 애도의 뜻을 표했다.

박보람 하사

2010년 4월 22일

천안함 굴뚝 안에서 박보람 하사의 시신이 발견됐다.

박보람 하사는 다리가 편찮으신 어머니의 병원비를 모았었던 효자였다.

박성균 하사

국군은 천안함의 함수를 인양하는데 성공한다.

국군은 함수에서 수색작업을 개시, 자이로실에서 박성균 하사의 시신을 발견한다.

그의 아버지는 운수업을 하시는 분이었는데 안전운전 하시는지 매번 걱정이었으며

시간이 날 때마다 부모님께 전화를 걸어 문안을 여쭙던 효자였다.

국군은 박성균 하사의 시신을 찾아낸 것을 마지막으로 하여

2010년 4월 24일 오후7시 22분 수색작업을 종료하였다.

이창기원사, 최한권 상사, 박경수 중사, 장진선 하사, 강태민 일병, 정태준 이병의 시신은 끝내 찾지 못했다.

천안함 영결식

2010년 4월 29일

천안함 46인의 용사에 대한 영결식이 진행되었다.

당신들의 희생을 잊지 않겠습니다.

One thought on “10년전 그날, 천안함 사건

  1. 그대들있어 이나라가 있는겁니다.
    고인들의 명복을 빕니다.
    후손들은 기억합니다. 그 애국심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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